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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은미(국민건강보험공단 행정지원 팀장) |
매년 국회에는 다양한 법안이 발의되지만, 처리되지 못한 채 계류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중에서도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 가능성과 직결된 사안으로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것이 바로 건강보험공단 특사경 도입을 골자로 한 사법경찰직무법 개정안이다. 해당 법안은 건강보험공단 직원에게 불법개설 요양기관, 이른바 사무장병원과 면허대여 약국에 대한 수사권을 부여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나, 21대 국회에서 임기 만료로 폐기된 이후 22대 국회에서도 여전히 본격적인 논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사무장병원은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없는 비의료인이 의료인 명의를 빌려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하는 불법 형태로, 건강보험 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대표적인 재정 누수 요인이다. 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25년 6월까지 적발된 사무장병원은 총 1,775개소에 달하며, 이로 인한 부당청구 금액은 약 2조 5천억 원에 이른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부당이득이 실제로 환수되는 비율이 8.5% 수준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이미 불법 개설 단계에서부터 차명계좌 사용, 허위 매출 신고, 재산 은닉 등이 병행되기 때문에 사후 환수에는 구조적인 한계가 존재한다.
현행 제도상 요양급여비 환수는 수사기관의 수사 결과를 통해 불법개설기관으로 확정된 이후에야 가능하다. 하지만 경찰 수사 인력의 한계와 사건 적체로 인해 수사에는 평균 11개월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고 있으며, 그 기간 동안에도 불법개설기관은 요양급여비를 계속 청구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행정 절차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이 납부한 건강보험료가 실시간으로 유출되는 구조적 취약점이라 할 수 있다.
건강보험공단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무장병원 대응 전담 인력을 운영하고, 조사 경험이 풍부한 전문 인력을 배치해 왔다. 또한 빅데이터를 활용한 이상징후 분석 시스템을 통해 불법개설 의심기관을 조기에 선별할 수 있는 역량도 이미 확보하고 있다. 이를 통해 수사 착수 시 평균 수사기간을 3개월 이내로 단축할 수 있는 준비가 갖춰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단 조사자에게는 수사권이 없어 계좌 추적이나 관련자 직접 조사 등 핵심적인 수사 행위에는 한계가 있으며, 이로 인해 실질적인 재정 보호 효과를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사무장병원 문제는 단순히 일부 불법 의료기관의 문제가 아니다. 수익 창출을 목적으로 한 과잉진료, 불필요한 검사와 처방, 의료 질 저하로 이어지며,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된다. 특히 건강보험 재정 악화는 보험료 인상이나 급여 축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어, 사무장병원 단속은 곧 국민 부담을 줄이고 보험 혜택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핵심 과제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최근 이재명 대통령의 업무보고 지시를 통해서도 분명히 확인된다. 대통령은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국정 운영의 주요 과제로 제시하며, 불법·편법으로 재정을 잠식하는 구조에 대해 보다 실효적인 대응 체계를 마련할 것을 주문했다. 이는 건보재정 보호가 단순한 행정 과제가 아니라 민생 안정과 직결된 국가적 책무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건강보험공단 특사경 도입이 의료인의 직업수행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그러나 특사경의 수사 대상은 사무장병원과 면허대여 약국으로 엄격히 한정되며, 보건복지부 장관의 추천과 검찰의 수사지휘를 받는 구조로 운영되는 등 충분한 통제 장치가 법안에 반영되어 있다. 이는 무분별한 권한 확대가 아니라, 국민의 보험료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보완이라 할 수 있다.
제도와 시스템은 시대와 환경 변화에 따라 유연하게 진화해야 한다. 사무장병원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기존 방식으로만 대응하는 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이제는 보다 실질적인 해법을 선택해야 할 시점이다. 건강보험공단 특사경 도입은 건보재정을 보호하고, 그로 인해 확보된 재원이 다시 국민의 의료 보장 강화로 환원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한 핵심 장치다.
건강보험 재정은 숫자가 아니라 국민의 삶과 직결된 문제다. 특사경 도입을 통해 불법으로 새어나가는 재정을 막고, 국민에게 돌아갈 이득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야말로 지속 가능한 건강보험 제도를 위한 가장 현실적인 선택일 것이다.